이란 전 샤 아들 레자 팔라비, 스웨덴 의회 방문으로 논란 증폭

SVD 보도에 따르면, 이란의 마지막 샤(군주)인 모함마드 레자 팔라비의 아들 레자 팔라비가 스웨덴 의회를 방문하여 정치권 내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번 방문은 크리스트데모크라테르나(KD)와 스베리예데모크라테르나(SD)의 초청으로 이루어졌으며, 팔라비는 이란의 현 정권에 대한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의 아버지 통치 시절의 경찰 국가적 성격에 대한 비판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습니다.

스웨덴 의회 방문 및 논란

레자 팔라비는 지난 3월 중순, 스톡홀름 노라 반토리에트에서 열린 지지자 시위에서 크리스트데모크라테르나 대표 에바 부시가 '자비드 샤(샤여 영원하라)'를 외치며 지지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이후 팔라비는 뮌헨 안보 회의에서 만난 크리스트데모크라테르나 및 스베리예데모크라테르나 의원들의 초청으로 스웨덴 의회를 방문했습니다. 의회 내에서는 팔라비의 방문이 의회의 공식적인 지지로 비치지 않도록 회의 장소 선정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의회 건물 밖에서는 예테보리와 말뫼 등지에서 버스를 타고 온 스웨덴 거주 이란인들이 팔라비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 위해 모였으며, 동시에 반대 시위대도 집결했습니다.

스웨덴 정당의 입장

에바 부시 크리스트데모크라테르나 대표는 팔라비를 초청한 것이 그를 이란의 지도자로 지지하는 입장이 아니라, 이란 국민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녀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이란을 원하는 반대 세력을 지원할 필요가 있으며, 레자 팔라비가 그러한 인물 중 한 명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반면, 밀셰파르티에트의 외교 정책 대변인 야코브 리스베리는 이번 초청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그는 팔라비가 매우 논란이 많은 인물이며, 그가 야권의 통합 세력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이번 초청이 그를 명백한 야권 지도자로 정당화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레자 팔라비와 이란의 역사적 배경

레자 팔라비는 1979년 그의 아버지가 군주제에 반대하는 민중 봉기로 축출되고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17세 때 이란을 떠났습니다. 팔라비 왕조는 1979년 혁명 이전 이란의 마지막 통치 왕조였습니다.

  • 팔라비 왕조의 시작: 1925년 군 사령관 레자 칸이 쿠데타로 집권하여 레자 샤 팔라비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1933년 영국 석유 회사 앙글로-이라니안과 이란 석유 채굴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 모함마드 레자 샤의 통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레자 샤는 퇴위하고 그의 아들 모함마드 레자가 샤로 즉위하여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 모사데그 총리 축출: 1951년 모함마드 모사데그가 총리로 선출되어 석유 자원 국유화를 결정했으나, 1953년 미국 시아이에이의 지원을 받은 샤 충성파 군부에 의해 쿠데타로 축출되고 새로운 석유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 독재 강화와 혁명: 이후 샤는 반대파를 탄압하며 점차 독재자로 군림했습니다. 석유 수입은 막대했지만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1970년대 후반 전국적인 시위와 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원문: SvD

본 기사는 SVD 보도를 바탕으로 코다리가 재구성한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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